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절기를 대하게 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반응이고 또 하나는 반발입니다. 반응은 그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영성을 만나는 기회로 활용하는 행위인 반면에 반발은 그 절기에 대한 심한 거부감으로 도리어 그 절기가 요구하는 삶과는 전혀 반대로 자신을 몰아가는 행위입니다.
이번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사순절에 반발하기 보다는 반응하기 위해서 사순절에 관련된 이모저모를 알아보려합니다. 알게 되면 달리 보이고 달리 보게 되면 다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순절의 영성 속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의 영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력에서 사순절(Lent)은 무엇입니까?
교회력에서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입니다. 이 절기는 특별히 회개일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서 시작됩니다. 이 절기에 특별히 강조된 것은 초기에는 세례였고, 후에는 개인의 경건성이었습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사순절의 간략한 역사는 어떻게 됩니까?
사순절이 40일의 기간으로 확립된 것은 오랜 기간의 변천의 결과였습니다. 원래 1세기에는 사순절이 단 40시간이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속에 40시간 동안 있었던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40시간이 끝나는 오후 3시에 부활절 예배가 있었습니다. 3세기경에 와서 40시간의 행사는 6일간으로 늘어난 바 있습니다. 이 6일간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 아니라 40시간을 연장한 것이었습니다. 이 6일간은 거룩한 주간(Holy Week)이라고 칭해졌는데 엄격한 절제의 기간이었습니다. 성 주간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중엽 예루살렘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 중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곳, 곧 다락방, 겟세마네, 빌라도의 법정 등에서 적당한 날에 예배가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순절이 40일로 확정된 것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처음으로 40일로 정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기록은 주후 330년의 아타나시우스의 편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주후 384년 예루살렘의 시릴의 [교리문답 강의]에도 40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시릴은 이때 세례 받는 이들을 가르치면서 “당신들은 오랫동안 은총의 기간과 참회를 위한 40일을 보내야 합니다”라고 하여 사순절의 원래 의미를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사순절은 40일간의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절로부터 46일 전에 시작합니다. 이것은 주일이 사순절 날짜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무엇입니까?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교회력 속의 절기를 말합니다. 이것을 '참회의 수요일'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교회는 재를 이마에 바르고,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40일간 묵상하는 사순절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사물을 태우는 재(ash)는 회개를 상징했기에 사제들은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뿌리며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어떤 날입니까?
부활절 성삼일로 알려져 있는 3일 중 첫날인 성목요일 저녁에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베풀었으며 때로는 세족식도 거행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행사는 모두가 서로 간에 종으로서 섬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이 두 가지의 행사는 진실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섬김을 따라 본받는 삶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이 날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에 기초해서 참회자의 화해를 실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 역사를 보면 후에 이 날에는 테네브레(Tanebrae)라고 하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이 예배는 7개 혹은 12개의 촛불을 정해진 구약 또는 신약의 말씀(주로 수난의 이야기)을 읽으면서 촛불을 하나하나 차례로 꺼 가는 예배입니다. 이 예배는 목요일 밤 이후에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어두움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감람산에서의 배신, 예수님의 체포, 그리고 재판에서의 저주 등을 통해서 더욱더 어두움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예배입니다. 이 예배의 마지막에는 물론 축도가 없으며 회중들은 어두운 가운데서 조용히 돌아가게 됩니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은 어떤 날입니까?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 금요일로 알려진 이 날 요한의 수난 이야기(요18-19장)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을 회상하였는데 이 날 드리는 예배의 중요한 성격은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이 날은 역설적으로 십자가의 좋은 소식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이야기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이 날을 가리켜 성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부릅니다.
성 토요일(Holy Saturday)은 어떤 날입니까?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날에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수난과 죽으심을 강조하며 묵상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날은 성 금요일과 함께 전통적으로 금식을 하는 날이었고 전 교인들은 이 금식에 동참할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또한 금요일과 함께 이 날은 피정의 날이었습니다. 즉 성금요일과 이 날에 교인들은 세상에서의 삶을 떠나 조용히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가운데 영적 수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부활주일 새벽 또는 아침 예배 시간에 세례를 받을 사람들을 위한 최종적인 세례 교육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순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사순절은 원래 부활절에 있을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국교의 길을 걸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아세례를 받게 되자, 사순절은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한 개인 경건훈련의 차원에서 지켜졌습니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사순절을 지키면서, 자신의 세례를 돌아보며 개인 영성을 돌아보는 기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례를 제외한 개인적인 영성적인 측면에서 교회 전통에서 강조한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금식과 기도와 자선입니다.
금식과 기도, 그리고 자선은 음식이나 시간, 혹은 돈처럼 가치 있는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움켜쥐고 있는 죄악을 내버릴 때 우리는 그 죄악 대신에 긍정적인 대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의 영성은 성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죄악으로부터 돌아서라고 요청할 뿐만 아니라 그 죄악을 대신하는 덕목들을 향하여 나아갈 것도 함께 요청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순절을 지키면서도 주일에는 금식을 하지 않는 것으로 40여일의 긴 시간 속에서 작은 부활절인 주일을 통해서 미래의 부활을 잠시잠깐 동안 누렸다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활절 성삼일을 개인적인 영성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성삼일 동안의 모든 예배에 참석한다. 2)성 목요일 예배 이후부터 부활절 예배 전까지 금식 기간으로 지킨다. 3)이 기간 동안에는 가능하다면 침묵하며 조용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한다. 4)이 기간 동안에는 쇼핑이나 오락 등의 개인적인 즐거움을 금한다. 5)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수난 본문을 낭독하거나 깊이 묵상한다. 6)시편 139, 51, 130, 22편 등의 말씀을 활용하여 기도한다.
사순절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옛사람이 죽지 아니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서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우리가 죽음 안에서 살 수 있다는 역설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죽음에 동참합니다. 십자가의 길, 부활을 향한 길은 우리의 옛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나아가는 길입니다. 죽음 안에서 우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믿음 안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요, 주님께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요, 우리 과거의 모든 실패와 죄악들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져 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주승중, “은총의 교회력과 설교”
정장복, “예배학 개론”
로버트 웨버,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
Alister E. Magrath, “Christian Spirit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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