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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얄라! 이젠 야르덴!!

심재원 선교사 (요르단)
다시 시리아를 품고 야르덴(요르단)으로
2022년 3월 1일 다시 중동(레반트) 지역에서의 사역을 위해 요르단으로 재 파송을 받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입국하였다. 지금은 문이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지만 제2의 고향인 시리아를 다시 마음에 품고 입국한 것이다. 지난 2011년 9월 6일, 시리아 내전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중동 지역을 떠난 후 무려 11년 만에 다시 레반트(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지역으로의 입성한 순간이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너무나 감사했다! 다시 시리아를 품고 레반트 지역으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언젠가는 시리아 땅으로 돌아가겠지!!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사역 마무리를 시리아에서 하고 싶다! 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잠겼던 빗장이 열리는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요단 동편의 땅 “요르단”으로 다시 불러주셨다!
요르단? 야르덴?
요르단으로의 재 파송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 마음 가운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르단?’ ‘요르단!’ ‘요르단이라고 하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 이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러던 차에 요르단 입국 후 감사하게도 한 달이 지나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요르단”이라고 하는 단어는 아랍어로는 “오르돈”이고, 셈족어(예수님의 언어, 아람어) “야르덴”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뜻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사전적 정의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른다!”고 하는 의미이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지도를 잘 살펴보면, 북쪽의 “헬몬산”에서 물이 시작되어 “갈릴리” 호수를 지나 “요단강”과 “사해”로 물줄기가 이어진다. 지하로는 헬몬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브엘세바까지 이어져 브엘세바 이후부터는 네게브 사막이 펼쳐진다. 지리적인(수평적인) 관점에서 보면 “야르덴”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것을 뜻하므로 북쪽의 헬몬산에서 시작된 물이 아래로 흘러 남쪽의 브엘세바까지 흘러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을 수직적으로 세워서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야르덴”이라고 하는 단어는 말 그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즉, 하늘에 있는 “생명수”가 아래에 있는 땅으로 흐른다!는 의미다. 하늘 “아버지의 생명”이 이 땅 요르단에 내려와 그 생명이 주변 나라로 흘러가는 것이 야르덴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이는 곧 요르단을 향한 그분의 뜻이요, 요르단의 “destiny(데스티니,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까 요르단을 향한 그분의 뜻과 섭리는 하늘의 생명수 즉, 생명이 위에서부터 내려와 요르단을 통하여 주변 나라로 그 생명이 흘러가는 것이다.
이러한 “야르덴의 역사”는 그분의 뜻 가운데 이미 요르단 땅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르단의 주변 나라들을 살펴보면, 북쪽으로는 시리아가 있고, 북서쪽으로는 레바논, 서쪽으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동쪽으로는 이라크가 있다. 남쪽으로는 사우디와 예멘이 있다. 공교롭게도, 현재 이들 주변국의 사람들이 “난민 신분”으로 모두 다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약 200만 명), 레바논, 팔레스타인(약 500만 명), 이라크(약 70만 명), 예멘 등의 나라 사람들이 전쟁과 내전,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모두 요르단에 들어와 전국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난민 사역”이 지난 2011년 이후부터 복음을 통한 “생명” 전달 사역인 야르덴의 사역, 야르덴의 역사가 요르단 주변 나라의 사람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할렐루야!
야르덴 사역을 통한 복음(생명) 나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야르덴의 의미를 깨닫고 난 이후에 바로 개인적으로 사역의 길을 열어 주셨다. 생명 사역인 야르덴의 사역을 열어 주신 것이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나누도록 인도하셨다. 복음의 목적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데 있다(딤후1:10).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막1:1, 롬1:2-4).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인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다(요10:10, 요3:15). 그러므로 복음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영생)을 얻는다(요20:31).
이러한 복음을 통한 “생명 나눔” 사역인 “야르덴”의 사역을 이곳 요르단에 있는 한인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뿐만 아니라, 요르단 목회자들에게도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을 나누게 하셨다. 2박 3일 일정으로 한인 사역자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요르단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복음생명캠프”를 진행하게 하셨고, 감사하게도 이집트에서도 허락하셨다. 야르덴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너무나 부족한 저희 가정을 다시 시리아를 품고 요르단에서 복음을 통한 생명의 전달자(고후3:6)로 불러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개인적으로 복음(생명)을 현지 목회자에게 나누고 있는 모습
지난 5월, 현지 목회자들과 복음생명캠프 후 단체 사진촬영하는 모습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초콜렛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땅 “야르덴(요르단)”에 일부 소수의 사람이 초콜릿과 헬루이야트(단 과자)를 돌리며 축하하고 기뻐했다. 지난 10월 초 “하마스”의 이스라엘 “로켓 공격”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전 국민의 70%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어서 반이스라엘의 정서가 만연한 이곳은 사람들이 하마스의 선 공격에 흐뭇해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도 잠시, 이스라엘의 하마스 대공습이 시작된 이후 이들은 거리로 나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으로 인한 만행을 규탄하는 데모와 시위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모스크로 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흥분한 데모대는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미국 대사관으로 유엔 사무소로 행렬을 이어갔다. 급기야 이스라엘의 공습과 만행을 비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상징 기업인 “맥도날드” 매장을 부수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 매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돕거나 협력하는 서방 기업(예: 까르푸)의 사진이 비칠 경우 그러한 기업들에 대하여 일부에선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때, 데모나 시위 가운데 가끔 총소리도 나는 등 과격한 양상으로 확산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너무나 막강한 화력과 무기를 지닌 이스라엘 군의 공격에 하마스가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 요르단에서도 데모나 시위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봉쇄 조치와 주동자 검거, 강경 진압으로 인하여 지금은 긴장감은 있지만 조용한 상태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작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마스도 이스라엘도 둘 다 옳지 않은 것 같고, 또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특별히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 아이들이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희생당하여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소식을 접할 때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기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박국”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본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고 역대하 20장 15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분명히 이–팔 전쟁을 통한 그분의 뜻이 있음을 깨닫는다.
경건한 선지자 하박국은 언약 백성의 범죄에 대해 탄식하며 하나님께 묻는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악과 불의, 불법이 성행하는가?” 그에 대해 하나님은 갈대아인(바벨론)들을 통해 유다 백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대답하신다. 그러자 하박국은 “어찌하여 악인들이 바벨론이 의인들이라 할 수 있는 유다 백성을 공격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그러자 하박국에게 묵시가 주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때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하박국은 바벨론에 임할 심판, 곧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며 주를 신뢰한다. 그는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 처한다고 하더라도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구원하시는 주로 인해 기뻐할 것이라 고백한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고, 오직 주 하나님만이 그의 힘이 되신다.
하박국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는 교훈은 “악인을 악인으로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택함 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차원(롬8:28)에서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이–팔 전쟁에 비추어 적용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인 “하마스”를 이스라엘을 통하여 심판하시고,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그분의 방법으로 반드시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는 더 나아가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한 그분의 경고 메시지이다! 우리 또한 그분의 심판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죄악에서 떠나 그분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전쟁”이라고 하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판”이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이다. 그 뜻은 “다시 세우는 것”, 즉 “교정”을 의미한다. 심판은 “의로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은 “그분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절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끊임없이 심판하신다!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세우시는 것이다. (시94:14-15, 시119:75)
결론적으로, 이–팔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지지 않으면, 우리가 바로 죄인이고 악인이기 때문에 악(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렘29:11)”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산다고 한다면, 마치 자녀에게 말하고 경고해도 듣지 않으면 매를 들어 훈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교정과 훈계의 마지막 단계인 전쟁을 통하여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결코, 우리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기도제목
1.
복음을 통해 생명이 나눠지는 야르덴의 사역을 저희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고 중동땅에 생명의 복음 전달자들이 더욱 일어날 수 있도록
2.
SY 내부로 들어가서 사역할 SY팀의 구성을 위해 (중국 사역자들과의 연합 사역이 일어나도록)
3.
저희 자녀들(갈렙, 안나, 다비)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